동화속의 다운 이불


[안델센 동화속의 다운 이불]

우리에게도 널리 잘 알려진 안델센 (H.C. Andersen)의 동화중에는 "완두콩 위에서 잠을 잔 규수" 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 줄거리를 대략 간추려 보면 어느 날 왕자가 황태자비를 맞이할 목적으로 세계일주에 나서게 된다. 황태자비가 될만한 감성과 자질을 갖춘 "진정한 규수"를 찾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끝내 적합한 감성과 자질을 겸비한 규수는 찾지 못하고 지친 몸으로 왕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며칠 후 , 심한 비바람의 태풍이 몰아치던 어느날 밤이었다. 이 떄 성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하인이 문을 열자 비에 흠뻑 젖은 한 소녀가 서 있었는데, 그 소녀는 "제가 왕자가 찾고있는 진정한 규수입니다"라고 말하였다.
 하인은 그 소녀를 성안으로 맞이하였고, 이윽고 왕비에게 인도되었다. 왕비는 하인으로 하여금 침실의 잠자리를 준비하도록 하였다. 왕비는 이때 침상위에 모든 이부자리를 걷어치우고 한톨의 완두콩을 갖다놓았다. 그위에 20장의 요를 깔고 또 그위에 보드라운 우모이불을 겹쳐놓았다. 그리고 그 소녀를 그 침대에 잠을 자도록 하였다.


이튿날 아침, 간밤에 잠 잔 기분이 어떠했느냐는 왕비의 질문을 받은 소녀는 "아주 힘들었어요, 무언가 딱딱한 것 위에서 잠을 잤기 때문에 온몸이 빨갛고 파란 자국까지 생기고 말았습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결국, 그 소녀는 "진정한 규수"로 인정받게 되었다. 20매의 요와 겹쳐놓은 우모이불 밑의 완두콩 촉감까지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섬세한 감성을 갖추고 있다는 증거로 충분하다고 판단되어, 그 소녀는 황태자비가 될 수 있었다. 실제로, 이러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덴마크나 스웨덴에는 이런 종류의 동화가 있다. 즉, 우모침구가 갖고 있는 수면효과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의 인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다운이불의 실용화 ]

파스칼.데이비의 "침실의 문화사" 에서는 우모침구의 실용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우모중에서 굵은 우모가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곳은 노르웨이 북부와 아이슬랜드에서 였다." 외측을 모피로 예술적으로 장식한 침대에서 사람들은 몸의 아래 또는 위에 우모로 만든 이부자리를 몇장이고 겹쳐 사용하고 있었다. 여기서 그 우모란 어떤 것인지 인용해보면, "에돌돈(혹은 에델돈 1700년)은 오리의 솜털로서 이 우모가 사용된 것은 북유럽의 강가를 따라 서식하는 이 조류가 그 풍토에 알맞게 서식 또는 사육됨으로써 얻어지게 되었다" 즉, 안델센 동화속에서 등장하는 우모이부자리의 우모와 동일한 오리의 우모이다.

이와 같이 우모를 얻게된 기술은 "어느 어부의 작은집 옆에 작은 배가 뒤집혀 있었으며, 한쌍의 오리들은 그 작은 배속으로 둥우리를 만들기 위하여 들락날락하다가 인간으로부터 모이를 얻게 된다. 그 대신에 인간은 그 오리의 솜털을 채취하여 이불에 채워 넣어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듯이 인간과 조류의 공생이 시작된 것이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우모를 채취할 목적으로 특정한 종류의 조류를 사육하는 방법이 발달되고 있었다. 즉, 오리 솜털이 보온효과가 뛰어나다는 인식을 이미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어떻게하여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를 살펴보려면, 솜털 등을 충전물로 이용하여 이부자리를 만든 최초의 시대를 살펴보아야 한다. 여기에는 인간과 조류의 공생이라는 생활모습이 북유럽의 거친 자연환경속에서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침구의 문화사"에서는 스웨덴 중부의 "다라칼리아"농민들이 만든 방의 침실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돌타일로 만든 큰 난로와 도자기제의 스토브 등 이들 난로와 스토브가 방을 따뜻하게 하고 복사에 의한 난방효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각 방의 침대에는 우모이부자리가 사용된다. 복사난방과 함께 우모이부자리를 사용함으로써 쾌적한 수면을 취하게 되는 방식이 스칸디나비아 각 지방에 널리 퍼져있다.


[유럽에서 다운 이부자리의 보급]

9세기 노르웨이의 통일을 이룩한 아서여왕의 묘(우서베리船墓선묘)가 1904년 발굴됨으로써 바이킹시대의 왕후생활과 그 시대 생활양식등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썰매나 마차, 천막, 침대, 의자, 주방용구 등의 부장품과 함께 여왕의 묘실은 직물이나 벽걸이로 장식되어 있으며, "시트나 의복외 침구나 방석은 거위털 제품으로 되어 있음을 보면, 그 시대의 사람들은 쾌적함과 아늑함을 선호하는 마음의 소유자였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센스를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루돌프.펠트나의 "바이킹 사거" ), 덴마크의 동북부 휴넨지역에는 "레드비"족장의 묘선에서도 죽은 사람이 오리털 이불로 싸여 잠들어 있었다고 추측하고 있으며, 덴마크 중부의 유트란드지방의 맘메인 호족의 묘소에서는 떡갈나무의 목관속에서 죽은 사람이 거위털 이부자리위에 편안히 뉘어져 있었으며, 금자수의 실크 소매자락 차림과 가늘게 짠 실크혁대를 차고 보석으로 장식한 의상을 입고 있었다. 즉, 이미 9세기경부터 북유럽에서는 우모침구가 보급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영어의 Down 은 노르웨이어의 Dunn을 어원으로 하고 있으며 독일어의 Dunn도 여기서 유래되었으며, 현재의 독일어 Daune로 변천하게 되었다.



출처    : 우모의 세계

지은이 : 김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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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엔플러스포인팅